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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코란도의 사나이’ 쌍용그룹 김석원 전 회장 78세로 별세

by 이장친구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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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그룹을 한때 재계 서열 6위 기업으로 끌어올렸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성곡언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김석원 전 회장이 오늘 새벽 3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성곡(省谷)은 김 전 회장의 부친인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호다.

30세에 그룹 물려받아 재계 6위까지 도약

대구 출신인 김 전 회장은 서울고 졸업 후 1966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유학 중이던 1970년 귀국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고, 베트남전에도 수색중대원으로 10개월간 참전했다.

2015년 2월 23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선영에서 열린 성곡 김성곤 창업주 40주년 추도식에서 장남인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술을 따라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DB

1975년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별세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쌍용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쌍용그룹의 모체는 1939년 창업주가 대구에서 시작한 비누공장 삼공유지합자회사다. 이후 1962년 시멘트 사업을 하는 쌍용양회를 설립하며 ‘쌍용’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 전 회장은 1975년 회사를 물려받은 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기업 규모를 키웠다. 쌍용중공업과 쌍용종합건설을 세웠고 석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3년에는 효성증권을 인수했다.

특히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김 전 회장은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며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 삼성을 제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동아자동차는 1988년 사명을 쌍용자동차로 바꿨다.

쌍용차는 그해 국내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대중화에 이바지한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하며 독보적 위치를 다졌다. 김 전 회장은 코란도를 타고 출퇴근하기도 했다. 1993년 출시한 중형 SUV ‘무쏘’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을 도입해 만든 대형 세단 ‘체어맨’도 유명하다.

쌍용자동차가 1996년 서울 한국무역전시장(KOEX)에서 연 '코란도' 새 모델 신차 발표회. /조선일보DB

김 전 회장 체제 아래서 쌍용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6위까지 커졌고, 김 전 회장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과 함께 ‘재계 3김’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정계 진출했지만 기업 위기 속 복귀

김 전 회장은 1996년 ‘정경동반 발전론’을 주장하며 정치권에도 발을 들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달성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룹 경영권은 동생인 김석준 전 회장에게 넘겼다.

 
 

당시 쌍용그룹은 자동차 사업 적자 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며 그룹 자체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쌍용그룹은 결국 쌍용차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1998년 1월 대우그룹에 매각했다.

김 전 회장도 기업이 어려워지자 1998년 2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쌍용양회공업 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착잡한 심정과 함께 커다란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그룹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쌍용차에 대한 무리한 투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경영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하며 쌍용그룹은 1990년대 말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2011년 7월 본지와 인터뷰한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조선일보DB

고성 잼버리 성공적으로 이끌어

김 전 회장은 기업인인 동시에 우리나라 동계스포츠와 레저산업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리프트’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1974년 용평스키장을 만들고 리조트로 개발했다.

그는 2011년 본지 인터뷰에서 “스포츠를 좋아해 유학 시절 스키를 타곤 했다. 우리도 산이 있고 겨울이 있고 눈이 있는데 왜 안 되느냐,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1982년에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선출돼 스카우트 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1991년 강원 고성에서 개최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당시 그는 1985년 뮌헨 스카우트 총회에서 한국이 제17회 세계 잼버리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설악산 야영장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문해 온갖 변수를 검토했다”고 했다. 2000년부터는 3년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WSF) 의장직도 맡았다.

지난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고성 잼버리’ 야영장에서 외국인 대원들이 파라솔을 설치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가족에는 부인 박문순씨, 아들 김지용(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김지명(JJ푸드 시스템 대표)·김지태(태아산업㈜ 부사장)씨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강원도 용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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