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헤이즐넛 커피를 파는 카페는 뭔가 더 우아한 곳으로 여겨졌다. 클래식은 너무 무겁고, 팝송은 경박해 보이는 공간, 주인의 선택은 십중팔구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이나 ‘디셈버’였다. ‘연주 음악은 안 팔린다’는 한국 시장에서 연주 음반 돌풍을 일으켰던 조지 윈스턴(74)이 4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윈스턴의 유족(누나와 조카)은 조지 윈스턴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지난 10년간 암과 투병해온 조지가 지난 4일 일요일 밤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그는 아내와는 헤어졌고, 자녀가 없다. 유족은 추모 글에서 “조지는 암 치료 중에도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했으며 그의 열정에 충실했다”고 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크루즈에 살았던 윈스턴은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을 진단받고 지난 2013년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투병해왔다.
유족들은 부음을 통해, 추모의 뜻을 전하려면 구호단체인 ‘피딩(feeding) 아메리카’, 암 치료 시설인 ‘시티 오브 호프 암센터’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 기부해달라고 했다. 살아서 자선 활동을 많이 했던 그의 유지를 따른 것이다.
그는 1949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나 몬태나, 미시시피를 거쳐 플로리다에서 대학에 들어가 사회학을 공부하다 자퇴했다. 어릴 때 피아노 레슨을 받았지만 음악을 할 생각은 없었던 그는 1967년 오르간 사운드가 돋보이는 그룹 ‘도어스’ 음반을 듣고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마스터했고, 기타, 하모니카 등 많은 악기를 잘 다뤘다.
1972년 첫 앨범을 냈고 1980년 ‘가을(Autumn)’과 1982년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to Spring)가 각각 100만장 이상, 같은 해 ‘디셈버(December)’가 300만장 이상 팔리는 등 ‘플래티넘’ 앨범을 연달아 냈다. 16개 음반을 1500만장 이상 판매했다. ‘포리스트’는 1994년 그래미상 수상 앨범이다. 연간 100회 공연을 했지만, 일상에서는 매우 조용했다.
“나는 동굴에서 나와 연주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에 있는 이유는 연주를 잘하기 위해서다. ‘사회적’이 되는 ‘비사회적인’ 방식이다. 나는 파티에 가본 적이 없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나는 ‘솔로이스트(soloist)’다.”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연주자가 됐지만, 한국에는 뒤늦게, 뜨겁게 인기를 알렸다. 1995년 서울시향의 환경음악제에서 정명훈과 협연하며 대중에게 크게 알려졌고, 이듬해부터 음반 판매가 폭발했다. 1996년부터 열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다. 음반 ‘디셈버’의 총판매량 300만장 중 100만장이 한국에서 팔렸다. 아이돌 그룹 음반에 버금갔다. 답례하듯, 그는 1999년 ‘플레인스’ 앨범 보너스 트랙에 ‘아리랑’을 연주해 수록했다. ‘조지 윈스턴’의 인기는 이후 색소폰 연주자인 케니지 열풍으로 이어졌다.
서정적이며 심지어 영적으로도 느껴지는 그의 연주를 빌보드차트도 ‘뉴 에이지’ 장르로 분류하지만, 그는 강하게 반발했다. “나를 그 범주에 넣지 말라”며 ‘전원 포크(rural folk) 피아니스트’라 부르라고 했다. “나는 영적인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그게 어디서 왔는지, 무엇인지도 모른다.” 뉴 에이지가 불교, 힌두교, 범신론에 기반을 둔 종교적 사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몬태나의 사계절은 나의 영감(靈感)이다. 나는 그 영감을 보관하는 도서관 사서(司書)일 뿐”이라고 말했던 조지 윈스턴. 음악 인생 50주년 기념이었던 2022년 마지막 음반 제목은 ‘밤(Night)’이었다. 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둠이 깊어질 때마다 아침은 더 빨리 다가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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