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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화려한 조명 대신 무대 뒤편 지켰던 '영원한 뒷것'… 대학로 소극장 학전 이끈 가수 김민기 별세

by 이장친구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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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등을 부른 가수였으며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과 같은 학전 소극장을 세워 33년간 운영했던 김민기(73)씨가 오래 앓아온 위암으로 21일 별세했다.

1970년대 대표적 저항가요 ‘아침 이슬’의 작사·작곡가이자 가수. 1974년 소리굿 ‘아구’의 대본 작업을 한 마당극 운동 1세대이기도 했다. 78년 노래굿 ‘공장의 불빛’, 84년 노래극 ‘개똥이’ 등이 심의에 막혀 정식 공연을 못 올리고 불법 음반으로 유통됐을 만큼 그의 청춘은 험난했다. 공장과 탄광에서 80년대를 보낸 그는 1991년 3월 15일 대학로 한 모퉁이에 소극장 ‘학전(學田)’을 세웠다. ‘배움의 밭., 문화예술계 인재를 촘촘하게 키워내는 못자리”를 바랐던 그의 초심이 담긴 이름이다.

올 초 거듭된 경영난에 대표의 암 투병이 겹치면서 결국 폐관하기까지, 이 못자리에서 지난 33년간 다양한 분야의 예술 인재들이 자랐다. 학전이 기획·제작한 359개 작품으로 배출된 배우, 연주자, 스태프만 780여 명에 달한다.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이정은, 장현성 등 굵직한 배우들이 이 소극장 무대에서 배우의 길을 다졌다.

대중음악계에도 학전이라는 못자리에 뿌리를 내린 모종들이 큰 나무로 자랐다. 1991~1995년 학전에서 1000회 라이브 공연으로 이름을 알린 고(故) 김광석을 비롯해 들국화, 안치환, 이소라, 장필순, 윤도현, 성시경, 유리상자, 장기하 등이 학전에서 노래했다.

1994년 초연한 ‘지하철 1호선’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전설이 됐다. ‘아침이슬’ ‘상록수’의 가수 대신 ‘학전 대표’로 불리길 원했던 김민기의 첫 뮤지컬 연출작. 그가 독일 뮤지컬 ‘Line1′을 한국어로 직접 번안한 극 속에는 베를린 대신 IMF 시절 서울의 풍속화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4000여 회 공연 동안 73만명 관객이 들었고,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며 1000회 차부턴 저작권료를 면제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이 뮤지컬엔 청량리 588, 지하철 신문팔이, 운동권 대학생 등 90년대 말 서울 풍경이 담겨 있다.

2012년 ‘지하철 1호선’이 공연 3000회를 돌파했을 당시 그는 ”같은 공연을 1000번 이상 하는 건 예술이 아니라 미련한 짓이라고 질책한 분도 있었는데, 예술이 아니어도 좋다. 젊은 배우들과 연주자들이 이 짓을 하면서 큰돈은 못 벌어도 직업이자 자기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으니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김민기와 학전의 또 다른 브랜드는 어린이 청소년극이었다.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 어린이 공연들은 ‘김민기의 학전’이 추구한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 무대였다.

유족은 배우자 이미영 씨와 2남.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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